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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 팔리아치 by 솔오페라단 @ 예당 오페라극장

by Vanodif 2017. 5. 28.






오페라 내용에 관한 포스팅은 http://vanodif.tistory.com/993 을 참고하세요.



평소 일기 같은 후기를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 오페라의 경우 더더욱 일기가 될 것 같다.




무대, 의상: 시칠리아의 마시모 벨리니 극장의 무대와 의상을 그대로 공수해 왔다고 했는데, 무대가 좀 너무 편리하게 사용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두 작품에서 사용된 무대가 같다), 안 그래도 현대적 재해석이 난무하는 요즘 예술계에 19세기 내용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는 그 시대풍 의상과 무대 장치로 진행된다는 점이 참 반가웠다. 내용과 잘 맞는 의상 덕분에 평소 오페라 보면서 해소되지 않았던 갈증이 딱 해소되었다. 오랫동안 이처럼 무대와 의상에 어울리는 내용과 노래, 연기를 감상하고 싶었다. 그동안 내용은 과거인데 무대와 의상은 현대여서 느껴지는 괴리감이 힘들었거든.


27일 공연은 한국인 오페라 가수분들의 버전이었는데, 내게는 좋았다. 특히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서 싼투차 역을 하신 김은희 님은 목소리가 내 취향이시던. 처음 듣자 깜짝 놀라서는, 이후 싼투차만 나오면 귀병풍을 만들었다. 어... '귀병풍'은 귓속 특정 부위에 대한 명칭이 아니라, 단지 내가 사용하는 개인용어?이다. 이번에 오페라를 자주 보면서 소위 '원숭이 귀'라고 하는, 귀가 옆으로 눕지 않고 앞으로 향해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게 되었는데, 내 귀가 옆으로 누웠기 때문이다. 귀가 누운 것과 서있는 것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더군다나 연주회나 오페라 감상에 있어선 더욱 그러하고. 누워있는 귀를 손으로 받쳐 손바닥으로 귀 뒤쪽으로 병풍을 만들면, 소리가 훨씬 풍성해진다. 그런데 음량이 증폭되면서 소리가 좀 더 날카롭게 들리는 경향이 있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때 귀병풍을 만들면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진다. 대신 오페라 가수분들의 노래를 그렇게 들으면 훨씬 매력이 증가하는데,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해서 좋아하는 음색을 지닌 가수가 노래하면 나는 슬며시 귀병풍을 만들곤 한다. 


김은희 님의 음색이 내 취향에 맞았다. 깊고 풍성한, 소프라노 드라마티코 같으셨는데(리리코이실지도. 그런데 뒤의 <팔리아치>에서 넷다를 연기하신 한예진 님에 비하면 김은희 님은 드라마티코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주 풍성한 음색이 멋지시다), 그렇게 밀도 높은 음색을 지닌 분들은 벨벳이나 꿀 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김은희 님의 목소리는 분명 농밀하고 묵직한데 목소리에 내가 '쇳소리' 혹은 '바람소리'라 표현하는 느낌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박진영 님이시라면 '공기 반'이라 표현하셨을 요소일 텐데, 내가 쇳소리, 바람소리라 하는 이유에는, 묘한 '서늘함' 때문이다. 묵직하고 풍성하지만 따뜻하고 포근하다기 보단 살짝 깔깔하면서 매끈하고 서늘하다. 내가 그런 목소리를 좋아해. 해서, 처음 듣자마자 '이 분의 목소리는 귀병풍을 하고 들어야겠다' 싶었다. 


음량 자체가 다른 분들의 서너 배로, 김은희 님 혼자 음량을 크게 조절해 듣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가 막 달려도 가뿐히 뚫고 나오는 목소리. 오페라극장의 큰 무대, 그것도 4층에서 들었는데도, 바로 앞에서 듣는 것 마냥 쩌렁쩌렁 풍성하게 전달되는 음량에 감탄했다. 특히 뚜릿두를 연기하신 신동원 님과 이중창을 할 때면 이거야 원, 듣는 이의 심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것이, 폭탄이라도 터지는 기분이었다. 황홀한 음색과 성량입니다.


뚜릿두 역의 신동원 님은 <팔리아치>에서도 카니오로 주연을 연기하셨는데, 꽉꽉 채워 밀도 높은 음색과 큰 성량, 뛰어난 기교를 선보이셨다. 내게는 <팔리아치>에서의 신동원 님이 더 인상적이었다.


<팔리아치>에서 한예진 님은 리릭 소프라노 같아 보였는데, 팔색조 같은 연기력을 뽐내셨다. 우리나라 오페라 가수 중에 이렇게 키크고 늘씬하고 아름다운 분이 있었나 싶도록 아름다운 분이셨는데, 어찌나 레치타티보를 맛깔나게 하시는지. 오페라에서 내가 레치타티보를 별로 안 좋아한다. 그렇다고 아리아만 모아 놓은 것도 듣기에 피곤해하고. 그런데 어제 한예진 님의 연기를 보면서, '레치타티보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구나'라고 처음 생각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느낌과 감정을 실으셔서, 듣기에 즐거웠다. 


이번에 들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된 점은, 역시 한국인은 목소리가 뛰어나다는 점. 비록 나는 노래를 못하고, 못해선지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_ㅜ, 한국인 오페라 가수들의 음량이 좀 독특하다는 걸 늘 느낀다. 비단 가수분들 아니더라도, 서양인들의 흡수하는 목소리에 비해 한국인들은 튕겨내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소 생각하는데, 서양인 대여섯 명이 와글와글 이야기해도 시끄럽지 않은 반면, 한국인은 한두 명이 이야기해도 시끄럽게 들리지 않나? 그것이 목소리 자체의 차이 때문이라 난 느끼고 있다. 그런 튕겨내는 목소리?는 오페라를 할 때, 특히 강렬한 감정을 표현할 때는 절대 강점이 된다. 노래 잘 하는 사람들 부러워요.


<팔리아치>는 처음엔 별로 재미 없다가 후반에 연극을 하는 부분에서 아주 재미있었다.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좀 더 재미있었고. 그런데 두 작품 모두 이야기 전개가 그닥 집중도 있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싼투차를 박대하던 뚜릿두가 갑자기 자신 만을 사랑하는 싼투차를 애틋하게 여기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 마치 오페라를 위해 겨우 만든 것 같은 스토리였달까. 뭐, 노래를 즐기면 되는 것이긴 한데, 스토리 전개상으론 아쉬움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구성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균형이 잘 맞다고 느꼈는데, 아마 가수분들의 노래를 즐기는 오페라를 기대하시는 분들께는 아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앞서 말했지만 난 레치타티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렇다고 고음 가득한 아리아만 계속되는 것도 피곤해 한다. 그런데 이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전주곡, 간주곡이 충분히 여유로워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길 수 있으면서도, 곳곳에 뛰어난 합창이 있어 합창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레치타티보는 상대적으로 적어서 내가 듣기에 좋았으며, 아리아는 강렬하게 풍부해서, 전체적으로 내게는 이상적인 구성이었다는 인상이다. 참 감상하기 편했다. 해서, 혹시 다음 기회에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다시 감상할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작품 만큼은 2층에서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보라색 옷을 입은 분이 김은희 님. 그 오른쪽이 신동원 님.




<팔리아치> 드레스 입은 분이 한예진 님.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신동원 님.




늘씬하고 아름다운데 노래까지 잘 하시는 한예진 님. 세상 불공평하죠.




예당 오페라극장 4층에서 즐길 수 있는 샹들리에.

알록달록 색감은 담기지 않았네.

시작하기 전, 인터미션 때면 이 샹들리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넘 아름다워요.

오페라극장 4층 감상의 혜택이죠.










이제부터 본격 일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딱히 큰 기대 없이 예매를 했다. 올해 오페라를 너무 많이 보는 바람에 여러모로 좀 힘들어져서, 이 작품은 후기를 쓰지 않고 가볍게 보고 올 요량으로 부담 없이 표를 구매했더란 거다. 그리고는 예습을 하는데... 어? 가장 유명하다 하는 인터메쪼가...! 오랫동안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던 그 곡이었음을 알고 가슴이 뛰었다. 참 유명한 곡인데, 집에 TV가 없어 어느 드라마나 광고에 사용되는 곡이라 검색할 수도 없고, 또 라디오에서도 스쳤으나, 곡명을 말해주지 않거나 들어도 어려워 제대로 기억할 수 없고 식으로, 스치긴 했지만 곡명을 짚어낼 수 없었던 곡이었다. 해서, 이번 공연에서 나는 사실상 이 곡 하나를 들으러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 연주 전반적으로 참 좋았는데... 하필 이 곡에서는 내가 상상하던 느낌이 나지 않아 서운했다. 우선 연주가 너무 빨랐다. 어느 연주를 검색해도 이 곡을 빨리 연주하는 지휘자는 없는데 말이다. 오페라 결말의 비극성을 암시하는 이 감상적인 곡이 너무 빠르게 연주되었다는 느낌에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좀 작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곡의 첫부분에서 바이올린이 나올 때 내게 연상되는 것은, 수십 개의 가느다란 거미줄이 동시에 뻗어나오는 장면이다. 햇살에 은빛으로 빛나는 거미줄이 천천히, 곧게, 열을 지어 뻗어나오는 장면이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것인데, 오케스트라의 합이 너무 잘 맞으신 것인지, 바이올린 두세 대의 느낌 밖에 나지 않았어서, 개인적으론 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연주 내내 눈을 감고 들었다.





죠르쥬 프레트르


시카고에 있었을 때 나는 여자 기숙사 203호에 있었다. 아직 미국에 있은지 몇 달 되지 않았던,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때. 학교에서는 누구든 지나다 만나면 인사를 나누지만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시기였다. 봄날의 어느 늦은 밤, 자기 전에 씻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복도 끝방인 205호의 문 앞 복도 바닥에 Lindsay가 앉아 있었다.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할 수가 없었던 것은, 그녀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는 폰이 들려 있었고, 아마도 룸메이트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복도로 나온 것 같았다. 205호는 다른 방에 비해 크고, 또 다른 방들과 간격이 좀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복도에서 통화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폰을 붙들고 나지막이 말하는 그녀의 음성은 눈물에 흠뻑 젖어 뭉그러지고 있었다. 늘씬하고 가는 체형에 검고 커다란 눈. 검고 풍성한 곱슬머리, 스웨덴 계열 다운 창백하게 하얀 피부에 깊게 패이는 볼우물과 시원한 미소가 항상 인상적이었던 린지가 그렇게 애처롭게 울먹이는 모습은 내게 낯설었고, 그런 그녀에게 신경쓰이지 않도록 조용히 문을 닫았다. 새벽녘까지 그녀의 울음소리는 방문을 두드렸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명훈



아침이 되어 고민 끝에 수업 가기 전 그녀 방문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Are you OK, Lindsay? If you need someone to talk to, I'm here for you. Have a good day."


늦은 오후, 캠퍼스를 지나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린지였다.

그녀는 예의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Thank you so much, V. You are so sweet. I'd love to talk to you,, and we will talk. Thank you, sweetie. You made me feel better. You're so kind."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목요일 저녁이면 채플에서 학교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다.

여느 떄와 마찬가지로 목요일 저녁 공연을 즐기러 채플 2층 중앙 앞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린지가, 제2바이올린석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지휘자의 팔이 올라가고, 가느다랗게 바이올린 선율이 뻗어나오기 시작한 곡이 바로 이 Intermezzo Sinfonico.


악보에 집중하며 연주하는 린지의 말갛고 투명한 얼굴에서

햇빛에 반짝이는 거미줄 같은 바이올린 음을 타고 

맑고 촉촉한 물기가 묻어 나왔다.





리카르도 무티



덕분에 그리운 시간으로 다녀올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