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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et

[발레] 댄스 인투 더 뮤직 Dance into the Music by 국립발레단 KNB - 국립발레단의 다정한 선물

by Vanodif 2017. 8. 7.









국립발레단 < Dance into the Music >은 국립발레단의 소품과 < KNB Movement Series >에서 호평받은 단원들의 안무작품이 라이브 연주와 함께 하는 공연이다. 발레와 연주의 아름다운 앙상블에 피아니스트 조재혁의 해설이 더해진 이 공연은 국립발레단 부설 발레아카데미 작품을 시작으로 클래식 발레부터 모던 발레까지 한 무대에 담았다.


* < Rising Stars 3 Gala >는 프로그램 편성으로 인하여  < Dance into the Music >으로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핑크색과 그 아래의 검정색은 토요일 후기, 파란색은 일요일 후기.


프로그램


Etudes

음악 프레데리크 쇼팽 

안무 이종은 


ㅡ 국립발레아카데미의 어린 새싹들. 생각보다 굉장한 실력. 남성 무용수는 장래가 촉망된다.




빈사의 백조

음악 카미유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백조'

안무 미하일 포킨 


ㅡ 백조의 죽는 장면.  Swan Song 그 자체. 박슬기 님께 맞춘 듯한 안무가 인상 깊었다.


바로 전날, 유니버설의 <백조의 호수>를 보았기 떄문인지 이 작품이 연결된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인데, 생상스의 곡에 빈사의 백조, 즉 죽는 순간의 백조를 안무로 담은 곡이다. 안무 자체도 훌륭하거니와, 박슬기 님의 그 우아하면서도 애처로운 연기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박슬기 님의 춤은 동화를 연상시킨다.



흔적 

음악 에릭 사티 ‘3 짐노페디-No.3 , No.1’ 

안무 박일 


ㅡ 신승원 님의 매력. 점점 빠져들게 된다.




※ 이후 모든 사진 출처: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확실하게 알겠다, 신승원 님의 매력. 신승원 님은 내게 개인적으로 참 도움이 많이 되는 무용수인데, 내가 모던 댄스의 무거움을 버거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발레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바로 인간의 물성을 뛰어 넘는 가벼움이기 때문에, 바로 그 물성과 육체성을 한껏 강조하는 모던 댄스나 그에 가까운 모던 발레는 내게 부담스럽다. 그런데 신승원 님의 춤은 질량이 느끼진다. 즉, 물성, 육체성, 존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아슬한 선을 넘지 않고, 그 물성을 발레로 발레답게 표현한다. 해서, 가벼움만을 쫓는 내 눈을 기꺼이, 거부감 없게 육체성으로 이끈다. 발레의 품위와 우아함으로도 육체와 감정의 무게를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무용수. 내게 신승원 님은 그런 의미다. 아직은 보는 내 마음이 위태위태하다. 자칫 물성이 너무 느껴진다면 내게는 모던발레가 아닌 모던댄스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인데, 모던 발레와 모던 댄스의 미세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을 절묘하게 보여주시는 분이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몸은 가벼우신데 무게감 있는 감정을 잘 빚어 표현하시는 것은 멋진 재능이다.


사진 속에서 느끼는 지나간 사랑의 흔적, 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주제/ 소재다. 그려지는 동작과 감성과 문학이라면 대사가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했다. 신승원 님의 질량감 있는 표현이라면 자칫 신파극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 그런데 아니었다. 묵직하고 진한 감정은 표현하되, 불필요하게 넘치지 않고 깔끔하다. 선을 넘지 않는 품위. 좀 더 보고 싶다, 신승원 님의 춤은.



Quartet of the Soul 

음악 아스토르 피아졸라 ‘아디오스 노니노’ 

안무 박슬기 


ㅡ 감각적 안무. 스토리를 갖추면 근사할 듯. 조명 극 칭찬해.





박슬기 님께서 안무하신 이 작품은 피아졸라의 '아디오스 노니노' 연주에 사용된 네 악기를 춤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마지막 날 맨 오른쪽은 피아노를 담당하신 이영철 님. 그 옆은 바이올린 박슬기 님. 붉은 옷은 첼로 박나리 님. 그리고 왼쪽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젠 탱고 연주의 핵심이 되어 버린 악기 반도네온인 듯 하고 변성완 님께서 표현해 주셨다. 피아노의 경우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재치있게 표현한 의상과 함께 단번에 건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팔을 직선으로 나란히 뻗은 자세가 반복되었고, 바이올린 역시 양 팔을 기역자로 교차시킨 상태에서 활을 켜는 동작으로 잘 표현해 주셨다. 첼로와 반도네온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등장하셨어서 다양한 동작을 감상하진 못했지만, 어렵지 않게 그 악기들을 연상시킬 수 있었고.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이 '아디오스 노니노'는 '잘 가요, 노니노'라는 뜻으로, 노니노는 피아졸라 아버지의 별칭이며, 이 곡은 아버지의 사망 직후 작곡되었다. 그런 사전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초반 이영철 님의 건반 연기에서 쓸쓸함과 애상감이 묻어 나와, 돌아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박슬기 님의 바이올린이 등장하자, 역시나 <스파르타쿠스>의 절세미녀 요부 아이기나를 인상 깊게 연기하신 박슬기 님답게 낭창낭창 매혹적인 유혹이 시작되었다. 악기의 특징을 잘 살린 안무가 신선하면서도 아름답고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서의 조명은 특히 굉장한 효과를 주었다. 피아노의 독무 때 검은 건반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들이 여럿 비추었다가 나중에는 관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 하나가 남아 이영철 님을 비추었는데, 그 부분에서 노니노의 죽음이 떠올랐다. 그 외 다양하게 조명이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오선지를 상징하는 다섯 개의 줄이 조명으로 비추었는데, 선 위를 오가며 춤추는 네 무용수는 악기가 음표가 되고 음표가 악기가 되는 몽환적인 상상을 불러 일으켰다. 조명을 참 적절하게 잘 활용한 멋진 안무였다. 


이영철 님은 대체로 드라마가 강하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아마도 '감정 표현, 연기력'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을 텐데,  나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를 부담스러워하는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영철 님께서 표현하시는 드라마에는 마음이 움직이곤 한다. 한 음과 한 음 사이를 연결하여 소리내는 현악기와는 달리 음과 음 사이가 단절되는 피아노를 절도 있게 연기하시면서도, 바이올린의 유혹을 타고 사랑을 나눌 때는 멋진 호흡으로 열정을 보여주셔서 즐거웠다.


바이올린 역의 박슬기 님은 워낙 어떤 역할이든 찰떡같이 소화해내시는 분이지만, 본인의 안무를 연기하시는 모습은 더욱 특별했다.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를 듣는 느낌이랄까. 몹시 세밀한 부분까지 감정표현이 섬세하면서도, 순간순간 안무와 정확히 일치하는 분위기를 내셨다. 몸에 꼭 맞는 맞춤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표현을 보며, 본인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몸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무용수란 얼마나 멋진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센스 있고 영민한 안무를 보니, 멋진 스토리에 입힌 박슬기 님의 안무도 기대가 된다.



The Piano

음악 클로드 드뷔시 'Rêverie L. 68'

안무 이영철



ㅡ 나와는 상당히 다른 곡해석. 그 몽상은 어쩌면 몽마와의 춤인지도.


박효선 님이셨던가? 여성 무용수 분이 아름다우셨는데.


음. 마지막 날에는 해설을 해주셨던 피아니스트 조재혁 님께서 설명을 충분히 해주셔서 이해가 더 쉬웠다. 토요일에 이 작품을 보았을 땐 처음 테이블 위에서의 안무에서 마술사와 조수, 피아니스트와 피아노 건반을 떠올리긴 했었다. 그런데 내가 평소 이 곡을 들었을 때 떠올렸던 것과 너무나 다른 분위기와 안무가 보였어서 좀 당황했었다. 내가 이 곡을 통해 떠올린 몽상은 밝은 안개 속을 천천히 걸으며 공기 중의 물기를 한 방울 한 방울 피부로 느끼다가 꽃향기 나는 호숫가에 이르러 하늘을 나는 새의 무리를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영철 님의 안무는 '피아노'라는 제목에 맞게 어두운 실내에서 마술사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표현하셨는데, 관능적인 동작이 있어서 몽마와의 춤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런데. 조재혁 님에 따르면 이영철 님께서 이 안무를 만드셨을 때 조재혁 님 본인과 아내분을 떠올리셨다 하니, 몽마 쪽은 좀 과한 상상이었던 것 같다ㅡ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작품 해석의 절반에 해당하는 몫은 관객/ 독자에게 있다고 믿는 나이지만 말이다. 이 곡에 대해 나와는 상당히 다른 이영철 님의 상상과 해석을 대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신하면서도 관능적인 동작들이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Tango 

음악 아스토르 피아졸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봄’ 

안무 신무섭 




ㅡ <아디오스 피아졸라> 공연과의 확연한 비교. 발레가 관능을 말하다.


개인적으로 이 춤은 선물 속의 작은 선물 같았다. 이는 얼마 전에 예당에서 꾸아뜨로씨엔또스의 <아디오스, 피아졸라> 공연을 보았기 때문인데, 그 공연에서 보았던 탱고 무용수분들의 춤과 확연히 비교할 수 있어 좋았다. 탱고 무용수분들의 춤을 보면서 나는 발레 무용수분들을 떠올렸더랬는데, 그 춤을 발레 무용수분들께서 추신다면 어떻게 표현해주실까가 궁금했다. 탱고 무용수분들의 글래머러스한 몸매로 이루어지는 빠르고 힘있고 현란한 발동작을 보면서, 발레 무용수분들이 보고 싶었다. 그런 내 맘을 딱 읽은 것처럼 이 작품이 시작되었고, 아니나다를까 눈과 귀가 몹시 즐거워졌다. 


발레의 관능이란 이런 것이다, 싶도록 아름다운 여성의 등을 남성이 육감적인 손길로 쓸어내리는 것으로 시작된 이 작품은, 여성의 뇌쇄적인 유혹과 함께 관능적인 동작들이 일품이었다. 내내 깔끔한 열정을 보여주시다가 아크로바틱한 물구나무서기의 충격적 반전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낸 엔딩도 인상적이었다.



로미오와 줄리엣-발코니 파드되 

음악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안무 존 크랭코 


ㅡ 이재우 홀릭.


무난한 안무였다. 딱히 매력 없는 줄리엣의 안무. 굳이 말하자면 로미오를 위한 안무였다고 하겠다. 그런데 그 로미오가 하필 이재우 님이다. 덕분에 옴므 파탈 로미오가 되었다. 이재우 님 특유의 매의 눈으로 여성 무용수분을 서포트하시는 다정함에, 시원시원하게 자신의 마음을 주장하는 로미오의 남성성. 부드러움과 강함을 넘나드는 로미오의 화려한 유혹. 섬세하면서도 스피디하고 강한 이재우 님의 춤으로 이재우 홀릭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 참 곤란한데... 이렇게 재밌어지면 자꾸 발레에 더 빠져들게 되는데 말이다. 일요일 공연에서 이 작품은 토요일의 것과 완전 다르게 다가왔다. 일단 토요일의 C블록 보다 일요일의 B블록이 발레 감상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것이었고ㅡ이 작품의 경우 C블록은 결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C블록 중에서도 가쪽 자리에서는 로미오를 만난 직후 줄리엣이 C블록 쪽 커튼 뒤로 숨어서 로미오를 빼꼼히 쳐다보는 장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암튼.


허서명 님의 멋진 마스크와 산뜻한 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박예은B님이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이었나? 싶었다. 어찌나 사랑스럽게 표현하시는지. 그런데 전날의 이재우 님과는 또다른... 이 아니라 180도 다른 로미오를 허서명 님이 연기해주셔서 비명을 지르고 싶도록 즐거웠다. 참 신기하지? 똑같은 음악에 똑같은 안무로 춤을 추었고 두 분 다 누가 낫다 할 수 없도록 훌륭한 연기를 해주셨는데, 어째서 정반대의 성격이 표현되는 건지, 신기하고 멋진 일이다.


전날 이재우 님은 다정함과 강렬함을 넘나드는 옴므 파탈을 연기해주셨다면, 일요일 허서명 님은 17세 소년의 풋풋한 첫사랑을 설레도록 뽀송하게 표현해주셨다. 이 박예은B/ 허서명 커플은 아주 어린, 둘 다 첫사랑인 풋사랑 커플 느낌이었는데, 처음 2/3 동안은 줄리엣이 한두 살 많은 연상연하 커플처럼 느껴졌다가, 나중에는 둘의 나이가 바뀐 듯 줄리엣이 더 어린 느낌이 들었다. 사춘기 어린 나이의 첫사랑이라는 거. 그 '처음'과 '풋풋한 젊음'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참을 수 없는 설렘을 조금은 서툰 듯, 거부할 수 없는 솜털 보송한 용기로 나타내다, 곧 온몸으로 또 외부로 퍼져나가는 환희로 두 분 무용수께서 상큼하게 잘 표현해주셨다. 보는 내내 귀엽고 사랑스러워 눈을 뗄 수 없었다며. 달달했어요.



3.5 

음악 모리스 라벨 ‘볼레로’ 

안무 이영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볼레로 영상이다. 프랑스 발레리나 실비 길렘. 이런 무대, 직접 보면 얼마나 멋질까.




ㅡ 아... 이영철!


김지영 님의 카리스마. 깜짝 놀랐다. 워낙 지적인 무용을 보여주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번 이 작품에서의 김지영 님을 보고는, 지금껏 그녀를 위한 역할이 아직 마땅히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힘이 아니다. 카리스마. 그런 김지영 님의 카리스마를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했다. 스파르타쿠스는 아니었다. 프리기아가 멋지다 해도, 스파르타쿠스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발레 작품을 잘 모르긴 하는데, 내가 아는 선에서는 김지영 님의 카리스마를 위한 작품이 없다. 엘리자베스 1세를 주제로 발레를 만들어 보면 될까? 그러고 생각해 보니 역사상 독보적이었던 여성이 있었나 싶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핫쳅수트 여왕 정도면 될까. 선덕여왕? 김지영 님껜 엘리자베스 1세가 더 어울릴 것도 같고. 이영철 님의 안무 덕분에 짧은 시간이나마 김지영 님의 눈부신 카리스마를 볼 수 있었다. 더, 더, 더 보고 싶은 카리스마였다.


김지영, 박슬기, 김리회... 내가 좋아하는 올스타 캐스팅이라니. 눈이 화려했다. 왼쪽의 뽀얗던, 거의 주인공인 듯 하셨던 분이 안효진 님이신가? 정말 수고 많으셨던.



이 <볼레로>는 일요일 공연을 보지 않았다면 큰일났을 뻔 했다. 토요일 공연 해설에서는 세 분 무용수가 상징하는 발레에 대해 멘트를 해주시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안무가 좀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요일 공연에서 세 무용수가 각각 다른 발레 작품들을 의미한다는 해설을 듣자, 비로소 이 안무 전체가 파악되면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짜임새 있게 잘 만들어졌는지 감탄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 말을 토요일에 보았던 일행에게 전하자 억울하고 속상해 했다. 일행도 그 힌트가 없는 토요일의 작품은 안무가 좀 과하다 했거든. 모든 사람이 나처럼 여러 날 감상할 수 있지는 않을 테니 세 분 무용수에 대한 설명은 있으면 좋겠다 싶다. 하긴 좋은 작품일수록 여러 번 보아야 한 겹씩 더 해석이 되는 것이긴 한데. 나도 이 작품을 여러 번 볼 수 있어 그런 해석을 직접 해낼 수 있었더라면 소름끼치게 전율이 일었을 테지. 아직 내공이 너무 부족하다, 나는. 발레 작품도 훨씬 더 많이 보아야겠고. 언젠가 이런 설명 없이 한 눈에 다 알아보는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쓰겠다. 느낀 것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편의상 존칭이나 존댓말은 가능한 생략한다.


먼저 작품의 배경해설을 말한다. 이 작품의 <3.5>라는 제목은 세 명의 우수한 무용수와, 그들처럼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 있기에 아직 1이 아닌 0.5의 상태인 한 연습생 무용수를 의미한다. 0.5는 연습생이기에 작품 맨 처음에 다른 무용수들이 나오기 전에 혼자 미리 나와 춤을 연습하고 있고, 또 모든 춤이 끝난 후에도 마지막까지 혼자 남아 열심히 연습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작품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되는 정보로, 세 명의 우수한 무용수는 각각 다른 발레 <카르멘>, <백조의 호수>, <지젤>을 의미하며, 작품 중에 그 세 작품을 알아보는 것이 큰 묘미 중 하나가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습생이 몰두하는 춤동작을 임의로 '볼레로 동작'이라 칭하겠다. 아마도 발레의 기본이자 핵심이 되는 동작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연습생의 예습 볼레로 동작이 끝나자, 바로 무대 위에 선 네 명의 무용수를 조명이 비춘다. 조명에 대해선ㅡ에너지가 남는다면ㅡ따로 말을 하겠지만, 이 작품에서의 조명도 완전 브라보였다. 처음 연습생을 비출 때는 머리 바로 위, 즉 한여름 한낮 뙤약볕 아래 홀로 땀흘려 연습하듯 그림자를 거의 만들지 않는 위치의 조명이었다. 그리고는 무대 위 네 명의 무용수를 각각 동그랗게 비추는 조명은 살짝 뒤에서 비춤으로, 그림자가 앞쪽을 향하게 했다. 그렇게 해서 내는 효과가 얼마나 근사했나 하면, 네 명의 무용수가 여덟 명이 되어 버리더라는 거다. 그런데 또 재미난 것은, 1, 3번 무용수는 앞을, 2, 4번 무용수는 뒤를 보고 춤을 추는데, 그것이 그림자로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지는 않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그렇게 춤을 추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 '아래' '앞쪽'에서 김지영 님이 붉은 타이츠를 입고 등장한다. 이때의 조명은 살짝 앞에서 비추어 그림자가 뒤로 생기는데, 그리하여 앞 뒤로 무용수분들이 춤을 추고, 그 사이의 공간을 김지영님의 그림자와 나머지 네 분의 그림자가 마주 보며 채우게 되었다. 사람 몸의 아름다움과 그림자 동작의 아름다움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뛰어난 조명활용이었다 하겠다. 그렇게 등장한 김지영 님은 이내 '볼레로 동작'을 추기 시작하고, 뒤의 네 무용수는 그림자가 되어 김지영 님의 춤을 함께 춘다. 다섯 명이 춤을 추는 것인데 그림자를 합치면 열 명이 춤을 추는 셈이다. 이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짜릿해지는데, 묘한 구도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춤을 추는 김지영 님과 그 김지영 님의 네 그림자를 나타내는 네 무용수. 그런데 김지영 님 본인의 그림자가 그 넷을 향하고 있고, 본 그림자와 네 명의 그림자 사이를 또 다른 네 그림자, 즉 '그림자의 그림자'가 채우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 열 명은 모두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만 즐거워요, 이런 구조감? 너무 즐거운데.


토요일에 나는 이 부분에서 바로 김지영 님의 카리스마에 반했더랬는데, 심지어 아직 <카르멘>을 안무로 표현하시지도 않았는데 그러했다. 그냥 카르멘 자체로 등장하셔서는 다른 분들과 똑같은 볼레로 동작을 하시는데도, 차원이 다른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던 김지영 님. '역시 김지영 님이다' 싶었다. 그 뒤로 어... 토요일엔 박슬기 님이 먼저였는데, 일요일엔 김리회 님이 먼저였던 것 같네. 어, 어떻게 된 거지, 내 기억이??;; 암튼, 김리회 님은 파란색 타이츠를, 박슬기 님은 잿빛 타이츠를 입고서 순서대로 등장하여 볼레로 동작을 한다. 그리고는 세 분이서 무대 위로 올라가 본격적인 개별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제부터가 또 다른 해석의 묘미가 된다. 뒤에서 ㅡ ... 죄송해요, 남성무용수분들은 확인하지 못했어요.;; ㅡ 파트너가 와서 함께 춤을 출 때 맨 오른쪽의 박슬기 님은 팔을 허리춤에서 우아하게 앞으로 교차하는 <지젤>의 동작을 한다. 그렇다. 박슬기 님은 지젤이었다. 그런데 이 동작은 좀 슬쩍 지나가기 때문에 '지젤'을 염두에 두고 보지 않는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싶긴 하다. 박슬기 님께서 워낙 하늘하늘하게 표현해주시긴 하지만.


그 다음 김리회 님의 동작은 첫눈에 <백조의 호수>임을 알 수 있다. 양 팔을 옆으로 뻗은 채 물결치는 동작. 자, 그러면 이제 숙제가 하나 생긴다. 이 백조는 오데뜨일까요, 오딜일까요? <백조의 호수>에서 오딜은 흑조로 등장함을 잊지 않도록 하자. 글쎄, 당연히 오데뜨라 생각했지만, 일요일 공연을 본 나는 '오딜' 같다 여겨졌다. 왜냐햐면 김리회 님께서 표현해주신 백조는 너무 약해 부서질 것 같은 오데뜨라기엔 좀 권위랄까 힘이 있어 보였거든. 그리고 멋있었다. 하늘하면서도 시원하게 멋진 동작을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일 텐데 그 모순된 특징을 잘 표현해 주셨어서 나는 '오딜'이라 생각했다ㅡ지만 뒷부분에 가면 오데뜨임이 확실한 장면이 나오네.


그리고 김지영 님. 개별 춤을 추기도 전, 존재 만으로도 알 수 있도록 표현해주셨던 카르멘을 상징하는 안무는 발레 <돈키호테>에서 자주 나오는, 허리에 양 손을 손가락을 몸 앞으로 향하게 해서 얹는 동작이다. 이 춤을 추셨을 때 김지영 님은 카르멘 자체였다. 매혹적이고 강렬하고 카리스마 가득한. 당당한 자태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치명적인 카르멘. 발레에도 <카르멘>이 있다는 사실을 덕분에 알았네. 보고 싶은 발레가 또 하나 늘었다. 내년에 <카르멘> 해주시면 좋겠는데.


그리고는 다시 개별춤이 확장되는데, 백조의 호수 부분에서 양쪽으로 늘어선 무용수분들이 손으로 백조... 를 만드는 모습에서웃음이 터졌다. 이영철 님의 유머 감각이 적재적소에 깨알같이 박혀 있는 부분이었다. 역시 이영철 님, 싶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부분 시작될 때 김리회 님의 의상이 기괴?한데, 파란색 발레 타이츠에 클래식 튀튀의 치마부분을 걸친 채 춤을 추셨다. 그리고는 파트너와 파 드 되를 추면서 치마를 벗어 던지는데, 이 부분을 토요일에 <백조의 호수>임을 모르고 보았을 때는 남성 무용수와 함께 기존의 틀에 박힌 발레를 벗고는 자유롭고 새로운 모던 발레로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했더랬다. 확실히 <백조의 호수>임을 알고 보니 해석은 훨씬 명확해졌다. 지그프리드가 등장하면서 사랑으로 인해 백조의 저주를 벗어 던지고 사람이 된다는 내용을 표현했다. 하지만 새롭고 자유로운 발레로의 도약이라는 전날 내가 느꼈던 해석도 개인적으론 맘에 든다. 결국 그것이 이번 공연을 통해 전반적으로 내가 가꼈던 느낌과 통하는 것이니 말이다.


위의 볼레로 영상을 연상시키는 원형 조명 무대가 마련되고, 무대 위에서 개별 춤이 진행되는 부분에선 각각 캐릭터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다. 그러면서 아... 독특한 안무들이 있었는데 이틀 내내 너무 흥분한 상태에서 보아선지 기억이 안 나네. 아쉽다.


그 사이였던가, 그 후였던가, 삼각형 대열이 서고, 앞으로 박슬기 님이 나가서 춤을 추시는 부분. 음. 이 부분은 좀 더 분석과 이해를 하고 싶었는데 그럴 여유가 안 되었다. 무엇을 표현하셨던 걸까.


그리고는 펼쳐지던 군무는 참... 좋았지는. 감동을 다 표현하기에는 내 언어가 짧다 싶도록 좋았다. 이영철 님은 참 친절하고 좋은 안무가시지 말입니다. 이렇게 수석무용수분들께서 나란히 서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시니까 각 무용수분들의 특징을 딱 비교할 수 있지 뭔가. 이건 말야, 무용수분들을 아끼는 관객들에게는 은혜로운 안무인 거다. 평소 같은 무대에 선다 하더라도 각각 다른 배역의 동작을 하기 때문에 정확한 비교/대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나란히 서서 똑같은 동작을 동시에 해주시니, 각 무용수분들의 특징을 분명히 보겠더라는 거다ㅡ는 물론, 같은 동작이라 해도 맡으신 캐릭터에 따라 다른 느낌을 내시지만서도. 


일요일 일행은 나와는 처음으로 함께 발레를 감상했더랬는데, 김지영 님에게 열광하였다. 그 정도로 김지영 님의 춤은 근사했다. 그리고 김지영 님이 왜 김지영 님인지 그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냥 힘이 있어 카리스마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힘은 상당히 세련되게 조절되어 있었다. 그런데 선이 더없이 정확하고 깔끔하다. 발레를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보는 눈이 개운해지는, 참 좋은 동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품위 있고 절도 있으면서 강렬하고 매혹적인 동작. 정확함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이토록 쾌감을 주는 것이구나 싶었다.


모두와 함께 서니 박슬기 님은 확실히 낭창낭창했다. 부드럽고 매끈매끈한 동작. 평소 박슬기 님의 춤을 보면 '흐르는 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이렇게 보니 그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다. 섬세하고 매끈하게 잘 빠진 동작. 그런 매끈함과 세련됨이 주는 쾌감도 대단히 즐겁다.


김리회 님은 파워가 있었다. 보면 볼수록 뭐랄까, 과감한? 음... 과감한. 정확한 단어는 아닌데. 김지영 님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카리스마. 음... 터프한... 의 느낌인데, 투박한 터프함이 아니고 세련된 터프함으로... 아 그걸 뭐라 표현할까. 다른 두 분에 비해선 중성적이란 느낌을 받았고, 그것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김리회 님의 공연을 제일 적게 보았어선지, 그 느낌이 적확한 단어로 잡히지가 않네. 답답하다. -_ㅜ 암튼 보면 볼수록 더 집중해서 보게 되는 그런 춤이었다.


연습생을 연기하신 분이 안효진 님이 맞다면 드미 솔리스트이신데, 참 수고 많으셨어요. 끝까지 땀방울이 튈 정도로 너무나 열심히 춤을 추셨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순전한 열정의 모습이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느낌을 주었다.


각각의 춤을 추다 후반부에 모두가 같은 볼레로 동작을 추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에서 가슴이 찡했다. 그토록 훌륭하고 당당하게 춤을 추는 세 명의 발레리나도, 알고 보니 연습생의 그 초보 시절을 피나는 노력으로 겪어내었던 것이며, 이미 정점에 오른 지금 이순간에도 그들 안에는 그 기본 동작이 항상 끊임 없이 고동치고 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그것을 아직 새파란 연습생과 똑같이 공유하고 있음이 숭고함으로 다가왔다. 


볼레로는 음악 자체가 같은 멜로디의 계속되는 반복으로 인해 지난한 지루함의 고통 끝에 도달하는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낸다. 그리고 위에 실은 발레 안무 역시 같은 동작의 뚝심 있는 반복으로 인한 몰입과 숭고함을 불러 일으킨다. 이번 이영철 님의 안무에서도 내가 '볼레로 동작'이라 내맘대로 칭한 동작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데, 이는 끝없는 반복을 통해서 만이 마침내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본다. 그런 경지에 오르는 장인적 성공이란, 자고 일어난 어느날 아침 로또나 마법처럼 한 번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레리나 강수진 님의 그 발이 보여주는 바대로 묵묵히 혼자서 끝까지 해내는 끝없는 연습의 반복 만이 가져다 주는 최고 경지의 실력. 이영철 님은 멋진 메세지까지 담는 참 좋은 안무가다. 훌륭한 안무와 공연, 마음 깊이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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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궁금한 것은 조명인데, 이 엄청나게 센스있는 조명은 안무가들께서 설정하신 것일까, 조명팀과 감독님의 설정인 걸까? 작품의 효과를 200% 상승시키는 조명은 일등 조력자였다. 국립발레단은 특히 조명을 잘 쓰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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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을 보고 들었던 생각은 '국립발레단의 다정한 선물'이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 님의 해설, 실내악 연주와 함께 하는 귀와 눈이 함께 즐거운 공연은 얼마나 매력적인 선물인 건지. 국립발레단이 대중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이러한 것이다. "세련되고 다정다감한". 강수진호가 출범한 이후 국내 발레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ㅡ는 내가 발레를 본격적으로 즐긴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만;; ㅡ 아주 크고 굵직한 그림을 그리신달까. 이 생소했던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라는 구절을 이제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앞으로 또 어떤 국내 안무가가 어떤 안무를 해주실까. 오는 주말에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공연이 또 있는데, 기대가 모락모락 커지고 있다. 한 가지, 프로그램북이 충분하거나(전부 소진되었다 하여 살 수가 없었다), 혹시 가능만 하다면 미리 시놉시스나 안무의 구체적 내용 설명ㅡ공연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면 완벽할 테다ㅡ을 제공해 주신다면, 공연 현장에서는 안무의 줄거리를 따라가는 시간을 아껴 좀 더 안무 감상과 무엇보다 무용수분들의 표현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대한민국 발레의 발전에 큰 도약이 있으리라 믿는다. 황홀한 공연 고맙습니다.